이 판에서 밥 먹은 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97년 IMF 때는 아버지 퇴직금으로 산 주식이 반토막 나는 걸 옆에서 지켜만 봤고, 2000년 닷컴버블 땐 대학 선배가 새롬기술 하나로 인생 폈다가 그다음 해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걸 봤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땐 제 계좌로 직접 그 맛을 봤고요. 그런데 요즘 장을 보고 있으면, 그 세 번의 위기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기는 아닌데 위기처럼 흔들리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IMF나 금융위기 때는 적어도 “왜 이렇게 됐는지”는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은행이 무너졌고, 회사들이 부도가 났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반도체 회사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찍었는데도 주가는 하루에 10%씩 튀고 빠지니, 원인을 딱 짚어 설명하기가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지난달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한국 증시를 두고 “카지노”라는 표현을 썼더군요. 개인 투자자들은 “도박꾼”이라고 했고요. 처음 봤을 땐 “외국 언론이 또 자극적으로 쓰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가 나온 날 코스피가 5.72% 빠지고 코스닥도 5.32% 빠지는 걸 보고 나니,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습니다.
숫자로 봐도 그렇습니다. 코스피200 변동성지수, 흔히 한국판 공포지수라고 하는 VKOSPI 있잖습니까. 이게 6월 평균 85.42를 찍었습니다. 작년 6월엔 24.26이었으니 1년 만에 3.5배가 뛴 겁니다. 제가 트레이더 생활 하면서 이 지수가 40을 넘기는 것도 몇 번 못 봤는데, 요즘은 그게 기본값이 됐습니다.
거래 회전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금감원 자료를 보니 4월 기준 코스피 하루 평균 회전율이 1.48%, 코스닥은 2.56%더군요. 미국 S&P500이 0.22%인 걸 감안하면 우리가 6배 넘게 더 자주 사고판다는 얘기입니다. 저도 요즘 예전 버릇 못 버리고 며칠만 물려도 손이 근질거려서 팔아버리는데, 이게 딱 그 회전율 숫자에 제가 한몫 보태고 있다는 거겠죠.
하루에도 몇 번씩 사이렌이 울립니다
사이드카나 서킷브레이커, 이거 원래 웬만해선 안 나오는 겁니다. 제가 신입 때는 이런 거 한번 발동되면 그날 저녁 뉴스 톱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이번 여름엔 삼성전자 실적 발표하는 날 오전에 사이드카 걸리고 오후에 서킷브레이커까지 걸리는 걸 봤습니다. 하루 등락폭이 두 자릿수 넘는 날도 여러 번이고요. 예전엔 몇 년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걸 요즘은 한 달에 몇 번씩 보고 있으니, 장 열려 있는 동안은 진짜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불붙인 게 5월 27일 상장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입니다. 하루 등락률 두 배 추종하는 상품인데, 이게 오를 땐 화끈하지만 흔들리는 장에서는 복리 구조 때문에 원금이 순식간에 녹아버립니다. 실제로 관련 상품 한 달 수익률이 마이너스 76%까지 찍힌 걸 봤습니다. 당국이 뒤늦게 예탁금 3천만 원으로 올리고 투자 한도까지 만들었지만, 솔직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죠. 이미 많은 개인들이 이 신상품에 제대로 물린 뒤였으니까요.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도 예전이랑 결이 다릅니다. 예전엔 증권사 창구 직원이나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보고 종목을 골랐다면, 요즘은 텔레그램 리딩방이나 유튜브 실시간 방송 보면서 매매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지금 안 타면 늦는다”는 말이 SNS를 타고 몇 분 만에 퍼지고, 그 몇 분 사이에 매수 물량이 확 몰렸다가 또 순식간에 빠집니다. 예전 같으면 하루 이틀 걸릴 심리 변화가 지금은 실시간으로, 그것도 레버리지 상품에 실려서 몇 배로 증폭되니 변동성이 안 커질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제 나이대 사람들은 이런 속도를 따라가기가 솔직히 벅찹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판에 뛰어드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오히려 이런 속도에 더 익숙한 젊은 투자자들이라는 거죠.
그런데 손해는 공평하게 안 오더군요
자본시장연구원에서 개인투자자 10만 명 넘게 분석한 자료를 본 적이 있는데, 3억 원 넘게 굴리는 큰손들은 회전율이 11.6%로 제일 낮고, 하락장에서도 플러스 수익을 낸 유일한 그룹이었습니다. 반대로 계좌가 작을수록 회전율이 높고 단타에 매달리는 경향이 뚜렷했고요. 장이 오를 땐 큰돈이든 작은 돈이든 수익률 차이가 1.58%포인트밖에 안 나는데, 장이 꺾이면 이 격차가 확 벌어집니다. 결국 시드가 작을수록, 마음이 급할수록 더 크게 다치는 구조라는 거죠. 물타기하다가 계좌 반토막 났다는 얘기, 요즘 주변에서 정말 많이 듣습니다. 남 얘기 같지가 않아요. 저도 젊었을 땐 그렇게 몇 번 크게 데였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요즘 이렇게 합니다
솔직히 별거 없습니다. 회전율 높다고 수익이 높은 거 절대 아니라는 거, 이건 데이터가 매번 증명해줍니다. 상승장에서 단타로 재미 좀 봤다면 그건 실력이 아니라 장이 좋았던 겁니다. 저도 한창때는 제가 잘해서 번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냥 물이 다 같이 차오르던 시기였더군요. 밀물 때는 배가 다 뜨는데, 그걸 자기 항해술 덕분이라고 착각하는 거죠. 썰물이 빠지고 나서야 누가 발가벗고 헤엄치고 있었는지 보이는 법입니다.
레버리지 상품은 방향만 맞으면 되는 게 아니라 변동성까지 이겨내야 하는 물건입니다. 지금처럼 공포지수가 3배 넘게 뛴 장에서는 특히 위험합니다. 하루 20% 빠지고 다음 날 22% 오르면 원금이 회복될 것 같지만, 두 배짜리 상품은 그렇게 계산이 안 됩니다. 이런 산수를 모르고 들어갔다가 계좌가 녹아버린 경우를 이번 여름에만 몇 건을 봤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물타기, 이거 냉정하게 말하면 확신이 아니라 대부분 미련입니다. 손실 만회하려는 마음이 클수록 판단은 오히려 더 흐려지더군요. 제가 직접 겪어봐서 압니다. 2008년에 제가 그랬거든요. 떨어질 때마다 “이 정도면 바닥이겠지” 하면서 계속 사들였는데, 결과적으로 평단만 계속 낮아지면서 물린 돈만 늘어났습니다. 그때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손절은 능력이지 패배가 아니라는 것. 이 말을 20대 때 들었으면 코웃음 쳤을 텐데, 지금은 제일 많이 후배들한테 해주는 말입니다.
요즘 젊은 투자자들 보면 예전의 저를 보는 것 같아 안쓰러울 때가 많습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제가 물렸던 종목들은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복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의 레버리지 상품은 애초에 구조적으로 복구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시간이 약이 안 되는 상품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저는 요즘 후배들한테 “레버리지는 쳐다도 보지 마라”는 말을 예전보다 훨씬 자주 합니다.
이코노미스트가 쓴 “카지노”라는 말이 아프게 들리는 건,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변동성지수도, 회전율도, 레버리지 상품 손실 규모도 다 같은 쪽을 가리키고 있으니까요. 시장이 원래 이랬던 건 아닙니다. 언젠가는 다시 차분해지겠죠. 다만 그때까지는 저부터도 얼마나 벌 수 있는가보다,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려고 합니다.
※ 이 글은 개인 투자자로서의 경험과 공개된 통계·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쓴 개인 의견이며, 투자 자문이나 특정 종목·상품에 대한 권유가 아닙니다. 인용한 수치는 2026년 7월 기준 보도 자료를 따랐고,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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